창극 '그대 먼 길 돌아 여기에' 관람 후기
빛을 향한 한 청년의 절규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 불빛은 오늘의 청년과 시민들 가슴속에서 여전히 타오른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는다. “그대 먼 길 돌아 여기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김동수, 그는 왜 다시 광주로 돌아왔는가
청년 김동수의 부활, 그리고 우리 안의 5월
11월 11일 오후, 장성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 위 조명이 꺼지고 객석이 암흑으로 잠기자, 공연장의 공기가 미세하게 떨렸다. 단순한 암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장막이 내려앉는 순간이었고, 1980년 5월의 어둠 속으로 관객을 천천히 끌어들이는 초대장이었다.
창극 <그대 먼 길 돌아 여기에>. 장성이 낳은 5·18민주화운동 열사 고(故) 김동수의 짧고도 뜨거운 생을 그린 작품이 막을 올렸다. 무대의 첫 장면은 봄의 정적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대학 강당을 분주히 오가던 청년들, 법정 스님의 강연을 준비하며 웃던 얼굴들. 그 속에서 김동수는 평범한 청년이자, 세상의 고통을 품으려는 불자였다. 그러나 이 평온한 장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9년 10월, 유신의 종말이 찾아왔고, 이듬해 봄, 군홧발의 그림자가 다시 도시를 뒤덮었다. 극 중의 한 인물이 내뱉는 대사. “재야 인사들이랑 학생 간부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대요.” 그 한마디가 객석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중생 있는 그곳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청년 김동수의 내면이 부서지는 순간
극의 중심은 ‘광주’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에 서 있던 22세 청년의 내면이었다. 도청의 피비린내를 목격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떠나야 했던 두려움, 그리고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신념이 파도처럼 교차했다. 김동수는 잠시 광주를 벗어나 목포로 피신하지만, 끝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는 묻는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숨어 있는 나는 누구인가.” “중생 있는 그곳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지금 그분은 어디에 계신가.”
이 질문은 관객을 향한 물음이기도 했다. 극은 철저히 김동수 개인의 고뇌를 따라가지만, 그 고뇌의 결은 시대의 윤리로 확장된다. 불교적 관조와 인간적 분노, 신에 대한 회의와 사람에 대한 신뢰. 그 상반된 감정들이 임진택 명창의 작창(作唱)을 통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난 여기 계신 분들이 하나님이고, 부처님이라 생각해요.”
그 한 줄의 대사는 무대 위에서 가장 짧았지만, 가장 길게 울려 퍼졌다. 임진택의 창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의 진술이었고, 목숨을 건 서사였다. 대금과 북, 장구가 교차하는 리듬 속에서 청년의 절규는 서서히 기도로 바뀌었다. 그 기도는 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것이었다.

도청의 새벽, 그리고 남은 자들의 노래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도청의 밤’이었다. 시민군의 협상이 결렬되고, 계엄군의 진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동수와 동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밤이 될 것임을.
“오늘이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아요.”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히 말한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객석은 숨을 죽였다. 무대 위엔 총성 대신 침묵이 울렸고,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폭발이었다. 도청 내부에서 청년들은 관을 짜고, 희생자들을 수습한다. 합판조차 부족한 현실, 총탄 자국이 남은 몸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붙잡고 있었다.
그날 새벽, 1980년 5월 27일, 총탄이 도청을 관통했다. 그리고 한 청년의 시간이 멈췄다. 하지만 창극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무대 위에는 불빛 하나가 남았다. 희미하고 떨리는 불빛,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불빛이었다. 그것은 김동수의 혼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5월이었다.
조명이 다시 객석을 비추었을 때, 관객들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눈을 감지 못했다. 극이 던진 물음. “당신이라면, 그때 돌아갔겠는가?” 그 물음이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장성에서 피어난 광주의 혼
이번 공연은 단지 ‘5·18을 기념하는 창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역이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의식(儀式)이었다. 장성군과 청강창극단이 함께 만들어낸 이 무대는 ‘장성이 낳은 열사 김동수’를 단순히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성이라는 지역이 광주와 함께 공유한 역사적 심장을 다시 두드렸다.
김동수는 장성 출신이다.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5월 항쟁의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학생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총탄에 맞아 스러졌다. 향년 22세. 그의 죽음은 오랫동안 기록의 그림자 속에 있었지만, 이번 창극은 그를 ‘인물’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으로 소환했다.
창극의 대사는 간결했지만, 그 사이사이로 침묵과 눈빛, 소리의 여백이 말을 이었다. 관객은 그 여백 속에서 1980년 5월의 숨소리를 들었다. 무대 뒤편의 스크린에는 당시의 흑백 사진이 스쳐갔고, 무대 앞에는 젊은 배우들이 무릎을 꿇은 채 불빛을 들고 있었다. 그 불빛은 ‘진혼’의 불이 아니라 ‘기억’의 불이었다.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대 먼 길 돌아 여기에>는 바로 그 명제를 무대 위에 증명했다. 5·18의 진실은 이미 수많은 책과 영상으로 기록되었지만, 창극이 가진 힘은 달랐다. 그것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체험의 기억’을 일깨운다. 공연 내내 관객들은 과거의 방청객이 아니라, 오늘의 목격자가 되었다.
김동수가 겪은 두려움, 망설임, 그리고 결심이 우리 안의 윤리와 맞닿을 때, 5월은 ‘사건’이 아니라 ‘지속하는 현재’로 되살아났다. 극이 끝난 뒤, 백발의 한 노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때 그 애들이 우리 아들이었지…” 그 말은 기사보다, 논문보다, 훨씬 더 정확한 증언이었다.
오늘의 청년들이 다시 어둠 속을 걸어야 할 때, 김동수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줄까. 그는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귀환’으로 마무리되었다. 그의 귀환은 45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 장성의 무대 위에서 다시 이루어졌다.
청강창극단 박세연 대표의 말처럼, 이 공연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빛을 갈구한 한 청년의 절규는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빛은 여전히 이 땅의 청년들과 시민들의 가슴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 질문 앞에 선다.
“그대 먼 길 돌아 여기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이재국 기자 jcseoffice@gmail.com>

